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나영웅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에서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은 취향이, 개인의 특성 보다는 개인이 살아온 환경, 사회적 맥락의 발현이라 이야기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구별짓기’의 일환으로써 계급을 나누는 수단이라 한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이며 어찌보면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을 사회학자가 이론으로 정립했다는 것이 조금은 어리둥절하기는 하였다.
취향이란, 결국 내가 처해있는 환경에따라 경험과 선택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너무나 자명한 명제라 생각한다.
반면에, 나의 인간 본연의 기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내 기호조차 사회적 구조에 의해 내 취향이 조작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였다.
어쩌면, 저자가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저항정신의 힙스터 정신이나 나만의 19호실 조차, 역설적으로 사회적 구조에 순응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매트릭스 세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어찌되었건, 저자가 살아온 발자취의 소개를 보며, 나도 나 자신의 취향의 변천사를 함께 생각해보았고,
재미있게 술술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계급화되어가는 사회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저자의 말대로 현실을 인지하고, 나만의 독자적인 취향을 만들어가는 방법도 있을 것 같지만,
말처럼 쉬운일은 아닐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여전히 남들과 비교하는 문화에 절여진 한국 사회,
그리고 SNS나 수많은 대중매체로부터 끊임 없이 각인되어가는 상대적 박탈감과 계급화
이러한 현실속에서,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취향을 갖자’라는 문장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어려운 현실에서, 오히려 역으로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요즘 사회를 생각해보면, 자본관점에서의 계급 사회가 양극화 되어있지만, 비교적 과거에 비해서는 많은 취향들이 어느 정도 대중화가 되어가고 있고,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소위 말하는 고급 취향의 제공자들이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대중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트레바리와 같은 소셜링 등의 문화 자본등을 통하여, 어느 정도 취향의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을 인지하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해보며 나만의 취향을 형성해보는 것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줏대있는 나만의 취향을 갖는 것이,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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