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2025년 12월 28일 · 조회 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그동안 제목만 익숙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26년의 첫 책으로 읽게 된 것은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에는 가벼운 연애, 혹은 다자간의 연애관을 다룬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제목 그대로 삶을 가볍게 살아가는 태도를 말하고자 하는 소설일까, 혹은 그러한 삶의 방식을 옹호하는 이야기일까 하는 선입견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초반에는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토마시는 가벼운 연애관을 지닌 인물로, 여러 여성과 육체적 관계를 맺는 데 주저함이 없다.

테레자는 그러한 토마시의 성향을 알면서도 헌신적으로 사랑을 건네는 인물이다.

토마시와 비슷하게 자유분방한 사비나는 어떤 관계에도 얽매이지 않으려 하지만, 프란츠는 그런 사비나를 사랑하면서도 진지한 관계, 의미 있는 결합을 꿈꾼다.

이 네 인물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벼움과 무거움이 서로를 마주 보며 엮여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밀란 쿤테라는 이 대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니체의 영원회귀 개념은 이 질문의 출발점이 된다.

영원회귀란 동일한 삶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가정이며, 그로 인해 삶의 모든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무게를 갖게 된다.

니체에게 이 사유는 삶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극단적으로 무겁게 만드는 사상이었다.

반면 토마시와 사비나가 살아가는 방식은 이와 정반대에 놓여 있다.

그들의 삶은 단 한 번뿐이며, 비가역적이다.

“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 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 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

소설 속에서 말하듯,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 옳았는지조차 비교하거나 검증할 수 없다.

비교할 길이 없기에, 어느 쪽의 결정이 더 나았는지도 알 수 없다.

삶이 단 한 번뿐이라면 그 선택은 시험될 수 없고, 반복되지 않기에 점점 가벼워진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이 가벼움이란 친구는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제목은 분명 가벼움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만, 토마시와 사비나의 삶을 바라보며 그들이 정말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그들의 주변 인물들까지 포함해 관계는 공허하고 허무하게 흘러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쿤테라는 가벼움을 옹호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오히려 이 소설이 가벼움과 무거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토마시와 사비나는 연애에 있어서는 가벼운 선택을 반복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인생 자체가 가볍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가벼움과 무거움 그 자체보다, 왜 이 인물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더 시선이 갔다.

작품의 배경은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프라하의 봄 전후의 체코다.

공산화의 물결 속에서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비나,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자아비판을 강요받으며 살아가는 토마시의 삶을 보면, 이들에게 삶은 이미 충분히 무거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들의 가벼운 관계는 삶 자체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선택한 하나의 도피처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토마시와 테레자는 도시를 떠나 시골로 향하고, 목가적인 환경 속에서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아간다.

특히 마지막 장의 제목이자 상징적인 존재인 카레닌은 인상 깊다. 카레닌은 매일 반복되는 루틴 속에서 살아간다.

이는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반복되는 삶에 가깝다. 그러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던 인간들과 달리, 카레닌은 그저 행복한 견생을 살아가는 듯 보인다.

어쩌면 밀란 쿤테라는 이 소설을 통해 삶을 무겁게도, 가볍게도 만들려 애쓰는 인간의 태도 자체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아무런 해석도, 비교도, 의미 부여도 없이 그저 살아가는 존재의 가벼움,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는 참을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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