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어렸을 적, 부모님이 사두신 1980년대 발간본 어린왕자가 책장에 꽂혀 있었다.
‘~읍니다’로 번역된 아주 오래된 책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펼쳐 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자랑하려고 했는데…)
어릴 때는 곳곳에 그려진 삽화가 좋아 이따금 펼쳐 보곤 했다.
그때는 의미도 잘 모른 채, 그저 별에서 온 어린왕자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로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 보면 트레바리에서는 어쩐지 어린왕자로 모임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명성을 생각하면 의외였다.
그러던 차에 안반데기로 별을 보러 가는 번개와 맞물려 이 책이 선정되었으니, 다시 읽어 볼 좋은 핑계가 생긴 셈이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어린왕자는 사뭇 달랐다.
어린왕자가 여러 별을 돌며 마주친 사람들이, 하나같이 지금의 내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존중받고 싶어 하는 나에게서는 신하를 찾는 왕이,
가끔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나에게서는 술을 잊으려 술을 마시는 술꾼이,
오전 오후로 주식 창을 들여다보며 일희일비하는 나에게서는 별을 세어 소유하려는 사업가가,
쳇바퀴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나에게서는 시키는 대로 불을 켜고 끄는 점등인이 보였다.
모험담인 줄로만 알고 순수하게 빠져들던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시절이 ‘순수해서’ 좋았다기보다 ‘현실적인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서’ 좋았던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니 체리필터의 ‘Happy Day’가 떠올랐다.
난 내가 말야 스무살 쯤엔 요절할 천재일 줄만 알고
어릴 땐 말야 모든 게 다 간단하다 믿었지
이제 나는 딸기향 해열제 같은 환상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징그러운 일상에 불을 지르고 어디론가 도망갈까
찬란하게 빛나던 내 모습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어느 별로
혹자는 어린왕자를 두고 어른에게 순수함을 되새겨 주는 동화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반대로 묻고 싶다.
현실에 부대끼며 때가 묻은 어른의 시선이, 정말 무작정 부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우리가 세상을 숫자로 재고 따지는 일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 내기 위해 적응해 온 모습은 아닐까.
어린왕자가 별의 사람들을 딱하게 여겼듯 나 역시 그들에게서 나를 보았지만, 그 왕과 술꾼과 사업가와 점등인을 마냥 어리석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들도 나도, 각자의 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니까.
그러니 어쩌면 이 책이 진짜로 묻는 것은 ‘순수함을 잃지 말라’가 아니라, 별을 올려다보던 마음과 숫자를 헤아리는 손을 어떻게 한 몸에 안고 살아갈 것인가, 인지도 모르겠다.
안반데기에서 올려다볼 진짜 별들 아래에서, 그 질문을 오래 품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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