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뉴욕
신현호
[아무튼 뉴욕] 을 읽기전의 감상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떠오른 것은 가벼운 여행 에세이였다.
[아무튼 뉴욕]이라니 —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정한 여행지에 관한 이야기일까, 수많은 도시 중 왜 하필 뉴욕일까 하는 궁금증이 먼저 생겼다.
내게 뉴욕은 자유의 여신상, 센트럴 파크, 베이글과 스테이크로 대표되는 '세계의 도시’였다.
가본 적은 없어도 지난 리프레시 휴가 때 여행 후보로 잠시 떠올린 곳이기도 했기에 (어쩌면 이번 리프레시 휴가지로…?), 막연한 호기심에 책을 펼쳤다.
[아무튼 뉴욕]을 읽어가며
그러나 이 책은 예상과 달리 관광이나 여행의 기록이 아니었다.
저자에게 뉴욕은 '스쳐 가는 도시’가 아닌 살아내야 했던 삶의 자리였고, 책은 여행자가 아닌 이방인이자 이주민의 시선으로 기록된 도시 에세이였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은 뉴욕이라는 거울에 비친 '개인’의 이야기였다.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 적응과 고립 사이를 오가는 감정, 도시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낯설어하는 이중적인 태도까지 솔직하게 담겨 있었다.
특히 ‘플랜 A가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늘 다른 쪽에서 문이 열렸다’ 라는 문장은 깊이 남았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앞에서 점점 더 무던해져 가는 요즘의 내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이민자로 구성된 거대한 도시라는 배경 덕분에, 소속과 정체성의 문제도 선명하게 읽혔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여행과,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거주 사이에는 완전히 다른 공기와 결이 존재한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다.
다만 저자의 도시 사랑이 때로는 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서두에 “젊은 친구, 이 도시를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을 잃는 것이라네 - 뉴욕에서 길을 잃는 건 꽤 멋진 일이다.” 란 문구.
멋진 문장이지만, 길을 잃으며 도시를 경험하는 건 뉴욕만의 방식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어느 곳이든 뒷골목과 우연을 탐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이게 바로 뉴요커의 허세인걸까?
누구든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단지 어떤 이는 그것을 선언하고, 어떤 이는 조용히 품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복정]
책의 시선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사는 도시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나는 이곳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사랑하고 있을까?
문득 이전에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이 남았던 것은 마지막 장에서 여행이란 것이 굳이 타지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랭드 보통은 자신의 동네를 여행자로 빙의하여 여행을 하게 된다.
마인드 세팅만 바꾸고 여행과 같은 산책을 했을 뿐인데, 동네에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것들조차 하나한 새롭게 보이고, 하나하나 고찰을 하게 된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집 앞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세계가 새롭게 보인다는 그의 이야기는, 도시를 다시 읽어 보게 했다.
나에게 그 도시는 복정동이다. 오래 살아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계절처럼 여러 번 바뀌었다.
익숙해서 이름조차 생각하지 않던 길, 문을 닫고 생겨난 가게들, 반복되는 일상 속에도 누적된 감정, 웃음과 상실, 성장의 흔적이 있다.
더군다나 회사에서 영구 재택근무를 선언하고, 일상이 된 후 복정동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삶과 일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출퇴근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이 작은 동네는 개인의 서사를 품은 도시의 최소 단위가 되었다.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는 판교도 여러모로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깃든 장소이다.
긴 시간 트레바리를 해왔던 나에게 강남 역시 긴 추억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판교, 강남, 그 외 수많은 지점들도 단지 '장소’로 남지 않는다.
그곳에는 내가 지나친 시간과 사람, 말하지 못한 감정과 오래 남은 여운이 함께 쌓여 있다. 특정한 장소는 특정한 나를 호출한다. 우리는 공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의 나를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마음에 남은 것은 뉴욕을 사랑하게 해서가 아니다.
내 안의 뉴욕, 즉 나만의 도시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도시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살아낸 하루와, 그 하루가 켜켜이 쌓인 나 자신의 서사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아무튼, 뉴욕이 아니라 — 아무튼, 복정.”
내가 매일 서 있는 이곳 또한 누군가에게는 여행지가 될 수 있고, 언젠가의 내가 가장 그리워할 세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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