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2: 한국
조원재
미술에 대한 감상법?
미술에 대한 지식이 많이 해박하지 않지만, 나는 곧잘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즐기는 편이다.
도슨트나 미술 강의도 몇 번 다녀온적이 있지만, 미술 작품을 보는 시점에서 내가 느끼는 감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쩌면 깊이감이 없는 감상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 읽은 [방구석 미술관2 - 한국]편에서 소개된 어쩌면
백남준이나 이우환과 같은 거장들의 주관적인 창조법에 대응되는, 나만의 방식대로 완성하는 감상법은 아닐까?
근대주의를 비판하며 '타자를 살펴보자’를 말하고 싶었던 이우환.
모든 것이 창조자의 통제하에 의도된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예술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예술 작품이 완료되는 것이 중요하다면,
어쩌면 나의 감상법도 순수한 참여자로서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백남준과 플럭서스, 다다이즘과 같이 정말 양보해서 보면 참여하는 예술의 일종 아닐까)
물론 미술 작품이나 화가의 배경 등을 나중에 살펴보긴 하지만,
나의 감상법에서는 나의 감정과 느낌이 최우선이고
그 이외의 것들은 차순위가 되는 것 같기는하다.
과연 내 느낌대로 느끼는 관람은 참된 관람이 아니고, 방구석 미술관을 보고나서 얻게된 지식을 갖고 관람하는 것은 참된 관람일까?
물론 아는 배경이 있다면 작가의 의도와 함께 하이파이브하는 기쁨을 얻겠지만,
관람객으로써 나만의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즐거움도 또 하나의 축이라 생각한다.
어찌보면 배경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면,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작품을 감상하는 것 아닐까.
관람하는 것 뿐만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실 내가 그린 그림들에는 방구석 미술관에서 소개한 거장들처럼 어떠한 사연이 있거나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삘 그대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던 것일뿐.
공허한 마음에 무념무상으로 내 삘대로 그린다는 도한파라는 새로운 사조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거장들?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방구석 미술관]에 이어 이번에는 한국편이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언급하다시피, 나역시 예술하면 떠오르는 것은 수묵화보다는 서양화였다.
빈센트 반 고흐, 로트렉, 알폰스 무하… 등 서양 예술가들의 이름은 술술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같은 한국인인 거장들의 이름들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반면에 놀랐던 점은, 책에 소개된 거장들의 이름 중 낯익은 이름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몇번 조우했던 이중섭, 박수근
이름은 익히들어보고 작품도 몇번 마주쳤던 백남준
위작 논란으로 뉴스에서 만났던 천경자
사실, 작품이 주는 느낌이 중요한 나에게 서양이냐 한국이냐 아티스트의 국적을 구분짓는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심상을 받아들이고, 배경은 나에게는 차순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한국에도 이러한 예술가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 좀 더 눈여겨 보지 않을까.
한국 고유의 미?
책에서는 대부분의 거장들이 ‘우리 고유의 미’ 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계속해서 강조했다.
근대 예술가들이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나 6.25 전쟁으로부터 느껴온 정서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사실 한국 고유의 미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거장들 각자의 정서가 묻어나온다고 표현하는게 맞지 않을까.
다만, 한국편이라는 제목으로 수묵화나 서예 등을 생각한 나에게
소개된 대부분의 거장들은 서양화라는 틀 안에서 활동을 해왔던 것 같다.
어쩌면 '한국 고유의 미술’이라고 말하기에는 한계점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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