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서머싯 몸
올해 우리 모임에서 진행했던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인생의 베일’에 이어, '면도날’이 선정되었다. '달과 6펜스’가 워낙 잘 읽혔던 터라 기대가 컸지만, 면도날의 두께에는 조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일본 출장 중에 틈틈이 읽다 보니 금방 다 읽을 만큼 그 흡입력이 대단했다. 여기서 서머싯 몸의 명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서머싯 몸이 서술자로 직접 작중에 등장한다는 것인데, 이것이 실제 있었던 이야기인지 소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인생의 베일’과도 굉장히 비슷했다. 서머싯 몸 특유의 스타일인 것 같다. 한편, 플롯 자체가 '달과 6펜스’와 무척 닮았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제목만 봐서는 소설 내용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감이 안 잡히는 것마저 똑같다!)
이 소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술자인 서머싯 몸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래리, 이사벨, 엘리엇, 소피, 그리고 몸 자신까지. 래리는 마치 지난달에 읽었던 '싯다르타’의 고빈다와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욕망을 모두 뒤로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고뇌하는 한편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속 편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고빈다가 아니라 오히려 싯다르타에 가까운 것일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노홍철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러한 래리를 중심으로,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엘리엇이야말로 그 극단에 있는 사람으로, 허례허식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이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인물처럼 느껴졌다. 우리 모습의 대부분은 이사벨에 가깝지 않을까? 이사벨은 물질적인 가치를 누리면서도 정신적인 가치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리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주제는 '싯다르타’와 똑같이 깨달음인 것일까? 면도날이라는 제목의 유래를 어찌저찌 찾아보면,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 어렵듯 구원으로 가는 길도 어렵다’는 힌두교 경전에서 왔다고 한다. 솔직히 소설이 이 주제를 집중해서 조명했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결국 지난번 '싯다르타’와 같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를,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래리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는 없더라도, 내가 지금 좇는 것들 가운데 어디까지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한번쯤 되묻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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