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 2026년 3월 30일 · 조회 8

달과 6펜스

윌리엄 서머셋 모옴

이전부터 눈여겨보던 『달과 6펜스』를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지인이 서머싯 몸의 『면도날』을 읽고 작가를 추천해 주었고, 그의 작품 중에서도 제목을 익히 들어왔던 『달과 6펜스』가 입문작으로 제격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화가 고갱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가 생겼다.

또한 우리 모임에서 6개월동안 추천 목록에 올라왔으나 선정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달과 6펜스’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지 계속 곱씹게 되었다.

작품 속에서 이 단어들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해설을 통해 달은 이상과 열정을, 6펜스는 현실과 생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상징을 알고 나니, 소설 전체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스트릭랜드가 비범하다고 느껴졌던 점은 열정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했다기보다,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안정된 삶을 단호하게 버리고 예술에 인생을 불사질렀다는 점이다.

그의 선택은 숭고하다기보다 잔혹했고, 자유롭다기보다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달을 향해 걸어갔다.

유명한 예술가들 중에는 살아 있을 때 능력을 인정받고 안정된 예술 생활을 누린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그만큼 예술은 현실을 견디며 열정만으로 버텨야 하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그 사실이 스트릭랜드의 극단적인 선택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이미 안정된 삶을 살고 있던 스트릭랜드가 그 삶 속에서 예술을 병행할 수는 없었을까?

정말로 안정된 현실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일까?

이 질문은 소설이 끝난 뒤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스트릭랜드가 죽은 후, 그의 예술혼으로 인해 상처받았던 아내가

그의 명성을 이용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한때 달을 향해 불타오르던 열정이, 결국은 다시 6펜스라는 현실로 환원되는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예술조차도 결국 현실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 있다는 점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책을 덮고 나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어릴 적부터 희망하던 직업을 얻었고, 현실적으로도 크게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나는 달과 6펜스를 모두 챙긴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지금의 현실을 포기해야만 얻을 수 있는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면,

과연 나는 스트릭랜드처럼 선택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또 하나 떠오른 생각은, 내가 순수한 열정으로 무언가에 몰두했던 때가 언제였는지였다.

어릴 때부터 개발자가 꿈이었던 나는 그 꿈을 이루었지만,

언젠가부터 개발자라기보다는 그저 ‘안정적인 회사원’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커리어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저 안정만을 추구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비록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조금은 달을 향해 고개를 들고,

다시 한 번 열정을 불태워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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