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정대건
내가 요새 점점 T 성향의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감정의 과잉에 대한 내 항마력이 부족해서일까.
이름을 자주 들어 기대가 컸던 정대건의 소설 <급류>는 내게 다소 과장된 감정선과 신파적 연출로 가득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등장인물들이 물에 빠지는 장면의 반복은 데자뷰처럼 다가왔고, 마지막 결말에선 책을 던질 뻔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작가가 던진 질문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상처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도담과 해솔의 관계는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같은 상처를 품고 살아가며 한 사람은 회피하고, 다른 한 사람은 죄책감 속에 자신을 가두는 모습은 마치 서로의 결핍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두 영혼처럼 보였다.
그들이 나누는 감정은 따뜻한 위로이자, 동시에 서로를 잠식시키는 늪이었다. 작품 속에서 두 사람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어떻게 보면 불륜이라는 것도 그들의 감정앞에서는 사소한 사건으로 치부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 이후에도 이들이 ‘건강한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문득 생각했다. 만약 도담과 해솔이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
작가는 재회를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급류로 시작된 아픔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 더 진정한 성장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구원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나 역시 지나온 인연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서로의 결핍을 감싸 안는 것이 사랑의 한 형태라면, 서로를 잠식하지 않고도 함께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성숙한 사랑 아닐까.
상대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젠가는 그 슬픔을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모든 감정의 급류를 지나온 후 남는, 건강하고 단단한 사랑의 형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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